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(문단 편집) === 12년 만에 역할이 바뀐 당시의 주역들 === [youtube(XEf0pbR5CH4)] 한편 [[2004년]] [[노무현]] 대통령 탄핵 사태와 [[2016년]] [[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]]는 탄핵 추진을 주도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위치가 몇몇을 제외하면 거의 뒤바뀌었기 때문에 두 시기의 사진과 영상 자료를 비교하면서 당시와는 완전히 입장이 뒤바뀐 의원들의 모습을 보고 묘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. 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0Io0lcRHwjw|우연의 일치라고 하면 상당히 드라마틱하다.]] 아래는 예시: * [[정세균]]: 2004년 탄핵 소추 당시 [[열린우리당]]의 [[정세균]] 의원[* 당시 재선의원이었다.]은 탄핵 발의를 막기 위해서 [[대한민국 국회의장|국회의장]]석을 강제로 점거하고 있었으며 "박근혜 공개투표 하지 마!"라며 소리쳤으나 2016년에는 [[20대 국회]]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었고 정당한 권리를 가진 상태로 국회의장석에 서서 공식적으로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했다.[* 자신의 이름으로 탄핵소추의결서를 [[박근혜|피소추인]]에게 보내 그의 권한을 정지시켜 버린 건 덤.] 이를 비교하는 사진을 네티즌들이 정세균에게 제보하였고 [[https://www.instagram.com/p/BNyrHJZBL8h/?taken-by=gyunvely_413|인스타그램을 통해 이를 알려줘서 고맙다는 인증을 하였다.]] * [[추미애]]: 2004년 당시 새천년민주당 의원으로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인물 중 하나로 알려졌고 이후 탄핵 사태로 인해 국민에게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다. 반면 2016년에는 [[더불어민주당]]의 당대표로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. 두 탄핵 사태에 모두 주요 인물로 참여한 탓에 추미애는 '프로탄핵러', '돌아온 탄핵 전문가'와 같은 별명까지 붙었다.[* [[추미애]] 이외에도 [[심재권]], [[김무성]], [[심재철]], [[정병국]], [[정진석(정치인)|정진석]]도 노무현 대통령 탄핵, [[박근혜 대통령 탄핵]] 둘 다 찬성했다.] 다만 2004년의 추미애의 입장은 2016년에 비하면 좀 더 복잡하다. 간단히 요약하자면 2004년에는 탄핵 반대 입장[* 최고위 도중 [[설훈]]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.]이었으나 실제로는 당시 민주당의 반발로 인해서 탄핵을 찬성했던 당론에 끌려가듯 억지로 찬성한 경우였고[* [[남경필]], [[원희룡]], [[정병국]]도 원래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입장이었지만 [[한나라당]]의 요구가 매우 강해서 억지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. 이후 [[남경필]]은 [[원희룡]], [[정병국]]과 함께 [[박근혜]]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찾아가서 우리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것을 철회해 달라고 했지만 박근혜가 이를 거절했다.], 2016년에는 자신의 입장과 당론이 합의된 상태로 주도적으로 탄핵 찬성을 이끌고 갔던 차이점이 있다. 후일 여러 인터뷰에서도 노무현 탄핵은 내 정치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언급했을 정도였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미애는 노무현 탄핵 당시의 일로 인해 '주인을 무는 개'라는 정치인으로서는 심각하게 나쁜 이미지가 생겼다.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이 기각된 후 노무현이 안부를 물어주고 장관으로 기용하고자 하기도 했고[* 16대 대선 정국에서 추미애는 노무현을 위해 일반 시민들에게서 후원금(=돼지저금통)을 모아 줬던 사람이다.] [[문재인 정부]]에서도 신임을 받아 [[법무부장관]]으로 임명되었으니 행적으로만 본다면 [[비노무현|비노]]이면서 [[친문재인|친문]]인 인사다. * [[문재인]]: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피청구인 대리인단 간사로 활동했던 문재인은 2016년에 막후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이끄는 인사 중 1명이 되었다. 문재인은 노무현이 탄핵소추안이 가결당할 당시에는 무려 [[네팔]]에서 황급히 뛰어올 정도[* 히말라야 트래킹을 하다가 노무현 탄핵 사실을 접하고 급거 귀국했다고 전해진다.]로 노무현을 구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한 반면 박근혜가 탄핵당할 당시에는 되려 박근혜 퇴진 시위에 동참했다. 문재인 본인이 촛불 정국에서 맡은 역할은 정국이 뒤집혀지지 않고 끝까지 유지하게 하는 역할이라고 하였다. 탄핵은 [[안철수]]가 더 일찍이 주장하였다. 하지만 거대 정치 계파 [[친노]], [[친문]]의 수장, [[더불어민주당|제1당]]의 실질적 리더이며 지난 청와대 시절부터 18대 대선을 포함하여 노무현과 더불어 가장 박근혜에 대항했던 인물이라는 상징성 덕분에 언론 및 여론은 문재인을 더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. 문재인이 탄핵을 본격적으로 주장한 기자회견의 규모를 보아도 [[안철수]]와 문재인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. 2017년에는 파면된 채 청와대에서 물러나게 된 박근혜의 '''[[제19대 대통령 선거|빈자리를 채웠다.]]''' * [[김기춘]]: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소추위원(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자격)으로 활동했던 김기춘은 [[박근혜-최순실 게이트]]의 피의자 신분이 되어서 [[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]]에 불려나가고 [[박근혜-최순실 게이트/특검|특검]]에 소환되어 [[박근혜-최순실 게이트/재판/김기춘·조윤선·김상률·김소영]]을 받게 되었으며 이후로도 [[박근혜-최순실 게이트/재판/김기춘·김장수·김관진·윤전추]]과 [[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/재판/허현준·김기춘·박준우·조윤선·현기환·김재원·신동철·정관주·오도성]]을 받는 등 총 3개의 재판을 받게 되었으며 [[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의혹 사건]]에서도 검찰에 소환되는 등 본인은 완전히 몰락했으며 결과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원인 제공을 한 사람 중 하나였다. 그리고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심판에 관여한 재판관이 결정서에 의견을 표시하게끔 개정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인물이 김기춘 본인인데 이는 후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의 [[만장일치]] 인용을 보여주는 결과로 돌아왔다. * [[박근혜]]: [youtube(TASHlUl7OQs)] 2004년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직 대통령 탄핵 소추 당시 '''정말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면서''' 아예 가리라고 되어 있는 투표 용지를 다 보이게 투표함에 집어넣기도 하면서 노무현을 조롱하다시피 했는데 12년 후에는 오히려 본인이 탄핵당할 위치에 놓였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각되었고 본인은 만장일치로 탄핵당했다. 당시의 모습이 12년 후와 대비되면서 [[인과응보]]라는 평가도 있다. 여담이지만 아수라장이 펼쳐진 2004년의 탄핵 소추에 비해 자신에게 향한 탄핵 소추는 비교적 평화롭고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데 이는 [[국회선진화법]]이 생겼기 때문이다.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'''국회선진화법의 통과를 주도한 인물이 바로 박근혜 본인이다.'''[* 19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의 공약 중 하나였는데 통과를 미적대던 새누리당을 움직인 장본인이었다.] 노무현을 처형대 위에 올리면서 노무현의 목에 칼을 디밀고 히히덕거리며 좋아하던 박근혜였으나 정작 딱 12년 후 그 처형대 위에서 본인의 목에 칼이 디밀어지는 역사의 아이러니의 주인공이 되었다. 당시 노무현은 그 처형대 위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박근혜는 그 처형대에서 대가를 치르고 말았다. 가장 극명한 대조라면 '''[[김기춘|범죄자가 된 법사위원장]]/[[박근혜|파면되고 구속된 대통령]] vs [[문재인|대통령이 된 피청구인의 대리인]]/[[노무현|돌아온 대통령]]'''이라고 할 수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